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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by esra posted Feb 1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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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이라는 해는 각별하다. 적어도 이 해를 살아 넘긴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훗날 아무리 이야기하고 글로 쓴다고 해도 이때 그들이 본 시간의 뒤에, 사건의 아래에,

인간의 운명의 바닥에 있는 것은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 드리나 강의 다리 | 이보 안드리치

 

1918년 여름 - 불타 버린 전쟁터 위를 부는 희망의 바람, 초조함과 실망의 미칠 것 같은 열병,

두렵기 짝이 없는 죽음의 공포, 이해할 수 없는 물음. ? 왜 전쟁이 끝나지 않는가?

그런데 왜 끝난다는 소문이 솔솔 나도는가?

- 서부 전선 이상 없다 | E. M. 레마르크

 

1차 세계대전은 1914 7 28일에서 1918 11 11일까지 일어났다.

유례없는 세계대전은 발칸의 카사바<드리나 강의 다리>, 독일<서부 전선 이상 없다> 등 전 유럽을 휩쓴다.

실체 없는 소문으로 시작해서 점점 가까워지는 포화의 소리로 전쟁의 실체를 불안하게 기다리며 삶의 터전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드리나 강의 다리>

전쟁의 실상도 모른 채 전쟁 속에 던져져 라는 의문도 던지지 못하고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에 무감해지는 어린 병사들.<서부 전선 이상 없다>

 

두 시대의 경계선에 위치한 시기였으며 이런 시기에는 사라져가는 시대의 종말은 뚜렷이 보이지만 다가오는 시대의 시초는 분명치 않았다.

- 드리나 강의 다리 | 이보 안드리치

 

1914, 1918년은 분명 경계선에 위치한 시기였다.

전쟁은 시대의 종말 그 자체이다. 파괴와 증오가 팽배하고 평화 시에는 죄악시되는 것들을 권장한다.

그 참혹함 속에서 다가오는 시대의 시초를 느낄 수도 새로운 출발을 시도할 수도 없다.

 

온 전선이 쥐 죽은 듯 조용하고 평온하던 1918 10월 어느 날 우리의 파울 보이머는 전사하고 말았다.

그러나 사령부 보고서에는 이날 〈서부 전선 이상 없음〉이라고만 적혀 있을 따름이었다.

- 서부 전선 이상 없다 | E. M. 레마르크

 

이 세대에 대해 특별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세대보다도 더욱 대담하게 인생, 향락,

그리고 자유에 대해서 꿈꾸고 이야기한 세대가 일찍이 없다는 것이며,

이 세대 이상으로 고민하고 노력하고 많이 죽은 세대도 없다는 사실이다.

- 드리나 강의 다리 | 이보 안드리치

 

승전국이든 패전국이든 1918년 종전의 기운은 희망이었다.

하지만 파울 보이머를 비롯한 많은 병사들이 1918년 종전일 그날까지 전쟁터에서 죽어갔다.

 

그 죽음들은 전쟁 속에서 개별적인 의미를 갖지 못한다.

왕정의 몰락과 자유주의의 대두로 인생과 향락과 자유에 대해 가장 많이 꿈꾸었지만, 전대미문의 전쟁 속에서 가장 많이 죽은 세대로 뭉뚱그려진다.

 

아무도 전쟁의 정당성을 따지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으니까.

다만 희생의 필연만을 미화한다. 필요하니까.

 

누군가는 말한다. 오직 죽은 자만이 전쟁의 끝을 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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