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임무를 수행하다가 당신이 목숨을 잃을 가능성은 반반이오.”
“제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러면 당신이 죽을 확률은 99퍼센트로 올라갈 거요.”
프라하의 묘지 | 움베르토 에코
확률.
확률은 가능성을 수치로 말하지만, 수치가 높든 낮든 간에 일말의 불가능성을 내포한다.
99퍼센트의 가능성에 내포된 불가능성은 1퍼센트에 불과하지만, 그 1퍼센트에 당신이 해당한다면 당신은 100퍼센트의 결과를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99퍼센트란 확실히 선택에 있어 고민을 덜어주긴 한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감춘 채 아무나 붙잡고 상대방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대답할 수 있는 것은 둘 중의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살아날 수 있는 확률이 언제나 반반이었다. 그것은 이념의 법칙이었다.
고래 | 천명관
반반의 확률은 거의 무작위로 찍는 것과 같다.
특히 목숨이 걸린 경우 그리고 상대가 생각을 감추고 있는 경우, 이 확률게임은 위험천만이다.
이념이 개입되면 흑백만 존재하고, 그래서 이 반반의 확률게임에서는 항상 목숨을 걸어야 한다.
파스칼의 말이다. 영원한 행복은 '무한한' 가치가 있다. 그리고 누군가가 선행을 쌓아서 천국으로 들어갈 확률은(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아무리 작다 해도 분명히 '유한한' 값을 가진다. 따라서 종교란 판돈을 걸 가치가 있는 일종의 확률게임이다. 왜냐하면 '무한한' 가치에 '유한한' 확률을 곱하면 '무한한' 기대값이 나오기 때문이다.
확률은 과학이지만 철학적 논증에도 많이 인용된다. 살짝 말장난 같기도 하지만. ^^
버틀란트 러셀은 확률이론을 다음과 같은 모순적인 문장으로 표현하였다.
'확률'과 '법칙'은 분명히 반대의 뜻을 가진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무슨 수로 '확률의 법칙'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확률은 “현대의 신탁”이라고 한다.
인간은 알고 싶다.
살아남을 가능성, 성공할 가능성, 복권에 당첨될 가능성, 벼락을 맞을 가능성 등등.
그래서 “확률의 법칙”이라는 모순을 끊임없이 연구해서, 확률이론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