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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

by esra posted Apr 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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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이 닥쳤다.

 

무언지 모를 불안과 그래도 다 잘되리라는 믿음.

- 페스트 | 알베르 까뮈

 

최악을 감지하지만, 그래도 최악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

믿음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다.

 

페스트로 폐쇄된 도시, 오랑에 존재하는 다양한 인간군상.

구원이 아니라 치료를 하려는 의사 리유, 신앙 없이 성인이 되고자 하는 타루, 절망 속에서 신앙을 잃지 않으려는 파늘루 신부, 표현의 적확성을 찾아서 단어를 고르는 공무원, 미리 절망을 경험했기에 무리의 절망 속에서 행복한 코타르, 희생자, 희생자, 희생자……

 

그리고 랑베르 기자.

 

랑베르 기자나 그 밖의 사람들과 같은 경우를 잊어서는 안 되는데, 페스트로 인해 갑작스레 여행객 신세가 되어 버린 그들은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뿐 아니라 자신들의 고향으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이별의 고통이 더욱더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 페스트 | 알베르 까뮈

 

랑베르 기자는 이방인이다. 취재차 오랑에 왔다가 갑작스러운 폐쇄로 고립된 인물이다.

사랑하는 아내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닌다.

예외 없는 원칙 앞에서 좌절하고, 불법인 뒷거래로 빠져 나갈 방법을 찾는다.  

 

「하지만 전 이곳 사람이 아니라고요!

「어쩌겠습니까! 이제부터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여기 사람이 되신 겁니다.

- 페스트 | 알베르 까뮈

 

그가 후일 리유에게 했던 말에 따르면, 바로 그 순간 구급차가 어둠을 가로지르며 도망치듯 저 멀리 사라지는 가운데 그는 자신과 아내를 갈라놓는 장벽에서 탈출구를 찾느라 온 힘을 다한 나머지 여태껏 아내에 대한 생각이라고는 조금도 하지 않고 지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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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 알베르 까뮈

 

끊임없이 리유와 타루에게 말한다.

이 상황이 내 잘못은 아니지 않나, 사랑을 위한 탈출이 부당한 것은 아니지 않나?

리유와 타루는 말한다.

당신 잘못도 아니고 아내에게 가려는 당신의 선택도 이해한다고.

 

「제가 짐작하건대, 두 분은 모두 이 와중에 잃을 것이 하나도 없으시겠죠. 착한 사람들 편에 있다는 건 훨씬 더 쉬운 거예요.

- 페스트 | 알베르 까뮈

 

혼란의 시기에 착한 사람들 편에 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착한 편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그 반대편에 있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떠나고 싶고 떠날 수 있다. 리유나 타루는 비난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자꾸 주저한다.

 

「의사 선생님.」 랑베르가 말을 꺼냈다. 「저는 떠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남아 있고 싶어요.

랑베르는 곰곰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는데, 자신이 생각하는 바가 옳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만일 이곳을 떠난다면 부끄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떠난다면 자신이 남겨 두고 온 그 여자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마음이 편치 않으리라는 얘기였다. 그러나 리유는 몸을 바로 세우면서 단호한 어조로 그건 어리석은 생각이며 행복을 택하는 것에 부끄러울 이유가 무엇이냐고 말했다.

「그렇습니다.」 랑베르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혼자서 행복하다면 부끄러울 수 있습니다.

- 페스트 | 알베르 까뮈

 

그는 떠나지 않는다.

혼자서 행복하면 부끄러워서.

 

「병도 치료하면서 동시에 그것까지 알 수는 없어요. 그러니 되도록 빨리 병부터 치료합시다. 그것이 가장 시급합니다.

- 페스트 | 알베르 까뮈

 

시급한 일을 해야 할 때이다.

혼자 행복하지 않기 위해서 함께 해야 한다.

그래봤자, 치료도 봉사도 아닌 자발적 사회적 거리두기정도이지만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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